스타머 사퇴, 브렉시트 10년의 저주?

2026-06-22 21:20
 영국 노동당을 14년 만의 정권 교체로 이끌었던 키어 스타머 총리가 결국 당내 반발의 벽을 넘지 못하고 권좌에서 물러난다. 스타머 총리는 22일 런던 관저 앞에서 대국민 연설을 통해 총리직과 당 대표직 사임을 공식화했다. 그는 자신이 다음 총선을 이끌 적임자인지에 대한 당내 의구심을 겸허히 수용한다며, 9월 의회 복귀 전까지 새로운 지도자가 선출될 것이라고 밝혔다. 연설 도중 가족을 언급하며 눈시울을 붉힌 그는 국가의 수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남편과 아버지라는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전하며 부인 빅토리아와 함께 관저로 발길을 옮겼다.

 

이번 사임은 2024년 총선 당시의 압도적인 지지를 생각하면 충격적인 결과다. 스타머는 집권 초기 강력한 개혁 의지를 보였으나, 이후 이어진 경기 침체와 복지 정책을 둘러싼 당내 갈등, 그리고 해결되지 않는 이민자 문제로 인해 정치적 입지가 급격히 좁아졌다. 실제로 그의 지지율은 취임 초기 36%에서 최근 18%까지 곤두박질치며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노동당 내부에서조차 장관급 인사들이 공개적으로 퇴진을 요구하는 등 '리더십 부재'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스타머는 결국 지난 주말 측근들과의 논의 끝에 사퇴라는 결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정치권은 이번 사태를 브렉시트 이후 누적된 구조적 모순이 폭발한 결과로 보고 있다. 2016년 유럽연합 탈퇴 결정 이후 영국은 데이비드 캐머런부터 리시 수낵을 거쳐 스타머에 이르기까지 무려 6명의 총리가 거쳐 갔으나, 경제적 불만은 해소되지 않았다. 고물가와 에너지 위기는 서민 경제를 압박했고, 브렉시트의 핵심 명분이었던 이민 통제마저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023년 순이민자 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약속했던 변화가 나타나지 않자 대중의 분노는 집권당인 노동당과 스타머 총리를 향했다.

 

스타머의 빈자리를 채울 가장 유력한 후보로는 앤디 버넘 전 맨체스터 시장이 거론되고 있다. 지난주 보궐선거를 통해 화려하게 하원에 복귀한 그는 '북부의 왕'이라는 별칭답게 탄탄한 지역 기반과 행정 능력을 갖춘 인물로 평가받는다. 버넘은 시장 재임 시절 대중교통 개혁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으며, 중앙 정부의 권한 분산을 주장해온 점이 현재의 정치 개혁 요구와 맞물려 큰 지지를 얻고 있다. 그의 하원 복귀가 스타머 사퇴의 결정적 트리거가 되었다는 분석이 나올 만큼 당내 기대감은 최고조에 달해 있다.

 


하지만 누가 차기 총리가 되더라도 영국의 앞날은 첩첩산중이다. 고질적인 저성장 기조와 눈덩이처럼 불어난 국가 부채, 붕괴 위기에 처한 공공 서비스 시스템 등은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들이다. 또한 브렉시트 이후 소원해진 유럽연합과의 관계 재정립과 국방비 증액 부담 등 대외적인 과제들도 산적해 있다. 미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분석처럼, 영국의 위기는 특정 지도자의 무능보다는 수십 년간 쌓여온 정치·경제적 불만이 브렉시트라는 촉매제를 만나 폭발하고 있는 과정에 가깝기 때문이다.

 

영국은 이제 브렉시트 10주년을 앞두고 7번째 총리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노동당은 오는 7월 9일부터 차기 당 대표 선출 절차에 돌입하며, 9월 초에는 새로운 내각이 출범할 예정이다. 잦은 총리 교체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성이 국가 신인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운데, 영국의 유권자들은 더 이상 인물 교체만이 아닌 근본적인 시스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다우닝가 10번지의 주인은 바뀌겠지만, 영국이 직면한 거대한 시대적 과제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새로운 지도자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