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나비', 기계가 흉내 못 낼 호흡의 예술

2026-06-01 18:23
 인공지능이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여겨졌던 창작 분야까지 넘보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역설적으로 예술은 인간의 존재 가치를 다시 묻기 시작했다. 기술과 인간이 공존하는 오늘날 예술의 현주소를 조명하는 두 전시가 나란히 열려 눈길을 끈다. 춘천 이상원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도구와 경쟁자-살아있는 존재 증명법’과 성남큐브미술관의 ‘디지털 소장품전: 0과 1 사이’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인간의 존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이상원미술관의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의 소장품을 통해 새로운 기술 매체를 예술적 도구로 수용할 것인지, 아니면 예술가를 대체할 경쟁자로 간주할 것인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기획자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감각과 경험이 담긴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이는 기술 만능주의 시대에 창작의 근원이 결국 인간의 호흡과 신체성에 있음을 상기시키는 시도다.

 


전시작 중 최선의 ‘나비’는 인간의 생생한 숨결이 예술로 승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작가는 여러 참여자가 캔버스 위 잉크를 자신의 숨으로 불어 형태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통해 작품을 완성했다. 한 사람의 호흡이 멈춘 곳에서 다른 사람의 숨결이 이어지는 방식은 기계적인 복제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인간 공동체의 유대와 생명력을 상징한다. 안산 중앙시장의 한 노인이 자신의 숨결에서 나비를 발견했다는 일화는 작품에 서사적 깊이를 더한다.

 

이우성의 작품 ‘두 번 반복해서 그린 세진이’는 AI 시대를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해석의 여지를 제공한다. 2017년 제작 당시에는 지인에 대한 친밀감과 애정을 담은 초상화였으나, 오늘날에는 인간과 그를 닮은 인공지능의 관계를 은유하는 작품으로 읽히기도 한다. 같은 얼굴을 한 두 인물이 서로 다른 방향을 응시하는 모습은 기술 복제 시대에 개인이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을 시각화한 듯하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작품의 의미가 변주되는 지점은 인간 예술만이 가진 유연한 소통 능력을 증명한다.

 


성남큐브미술관에서 열리는 ‘0과 1 사이’는 디지털 이미지의 근간인 이진 코드를 화두로 삼아 우리가 매일 접하는 가상 세계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정상현의 ‘데칼코마니’는 현실의 공간을 반복 촬영해 겹쳐 놓음으로써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찰나의 감정과 환경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지는 삶의 궤적을 영상으로 포착해낸 점이 인상적이다. 이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면서도 그 안에 인간의 섬세한 시간성을 담아내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이문희의 ‘이노에스빠스’는 휴대폰 카메라로 기록한 도시와 자연의 파편들을 재구성해 새로운 풍경을 창조한다. 낡은 건물의 외벽이나 바닥의 균열처럼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흔적들은 작가의 시선을 거쳐 독특한 예술적 풍경으로 거듭난다. 이외에도 군중의 흐름을 우주적 관점에서 표현한 이지연의 작품이나 유리판을 겹쳐 착시를 유도하는 임정은의 작업 등은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인간의 감각적 탐구를 보여준다.